무단결근에 대한 변명
주말에 이사를 했다. 분명 이사 전날까지만 해도 ‘큰 짐만 대략 자리 잡아놓고 나머지 잔짐은 주말에 해야지’ 생각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세탁기 위치만 두 번을 옮겼고, 냉장고 위치를 옮겼고, 주방은 해도 해도 짐이 끝이 없고, 커튼은 달면 떨어지고 달면 또 떨어지고. 틈틈이 개 산책도 하루 세 번은 꼭 해야했다. 월요일 아침이 오는 게 두려웠다. 이대로는 출근 못 할 것 같은데... 출근하기 싫은데... 사실 몸이 진짜 안 좋아서 못 간다기 보다는, 이렇게 주말 내내 고통스러운 이사를 치르고서 돈 벌러 가야 한다는 게 그냥 너무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고나 할까.
어제라도 출근을 해야 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마저 정리할 것들이 너무 많았고, 엄마는 그것들을 혼자 할 수 없다. 주말까지 집안이 난잡한 상태로 두다가는 엄마는 정신병이 도져서 온갖 것들을 의심하고 고성을 지를 것이 분명했다.
이사 당일, 이사 업체에서 세탁기 위치 잡아준 게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로 이사짐 업체를 컨택한 내가 잡도리 당했다. 네가 정신차리고 살아야 그런 수모를 (대체 왜 그게 수모인지는 모르겠으나) 당하지 않는 것이라며 술 드시다가 밤새 고성을 질렀다. 항상 그런 식이다. 네가 알아봐, 나는 모르겠어, 네가 알아서 하고 결과만 말 해, 일단 결제도 네가 하고 나중에 계산하자.
잡도리의 수모를 당하지 않으려면 회사고 나발이고 빠릿빠릿하게, 졸졸 쫓아다니며, 개 산책도 틈틈이 하며, ”이거 갖다줘야 되는데“ ”아 이게 없네“ ”이거 필요한데“ 라는 한마디에 달려가서 뭐라도 갖다바쳐야 했다. 그래서 어제도 출근하지 않았다.
어제는 하루 종일 마음이 불편했다. 출근하면 얼마나 눈치를 줄까. 또 얼마나 뒷창 깔까. 사실 그래도 싸긴 하다. 바쁠 거 뻔한 연말에 지각도 조퇴도 반차도 아닌, 2일 연속 결근이면 누구든 욕 할 거다. 그래서 출근하기가 겁이 났다. 엄마는 어느정도 집이 정리가 되고 나니 “회사 짤리면 어떡하냐”며, 앞으로 내가 낼 생활비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우울했고 불편했고 불안했다.
퇴근하고 저녁을 같이 먹다 보면 “나 혼자 정리를 하고 개 산책을 했다/지긋지긋하다/지친다/니 때문에 이렇게 된 거 아니냐“며, 또 고성을 지르고 압박을 하고 고통을 줄 것이다. 그럼 나는 앉은 자리에서 고개만 푹 숙이고 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 염불 외워야할 것이다. 그게 너무 너무 싫고 두렵다. 근데 이사 하면서 돈을 너무 많이 썼고 그동안 내 몫의 생활비라며 월 90~100만원 씩 쓴 돈 때문에 독립할 돈을 못 모아서 나가지도 못한다. 악순환이다.
아무튼 그래서, 차라리 회사를 포기하기로 했다. 어제 저녁을 먹으면서 어떻게든 엄마 기분을 살피고 눈치를 보며 엄마가 분노하지 않도록, 갑자기 버튼 눌려서 폭발하지 않도록 정말 조심했다. 머릿속은 내내 앞으로 어떡해야 하나 착잡한 상태였다.
몇 번째 이직인지 감도 안 온다
대망의 오늘 아침. 새벽 6시에 개 산책을 했고, 빵 좀 먹고 옷 입고 나왔다. 출근할 생각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이 집을 일단 잠깐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에 나왔다. 버스에 타니 잠이 솔솔 왔다. 기절하듯 잤다. 자고 일어나니 회사 근처더라. 내리지 않았다. 8시 10분쯤 됐다. 팀장님께 보낼 문자를 쓰고 전송을 누를까 말까 잠깐 고민했는데, 생각해보니 퇴사하는 마당에 그게 뭐가 중요한가 싶어 보내버렸다. 퇴사 완료.
채용 공고 찾아보고 이력서 넣으려고 바로 도서관에 왔다. 12월 31일이라 그런지 사람이 얼마 없었다. 역시 연말에는 집에 있는 게 최고이긴 해...
바로 사람인, 잡코리아, 고용24에서 지원할만한 곳을 추렸다. 너무 없다. 총 10군데쯤 되는데, 다 경쟁이 치열하다. 안 될 거라고 포기한 상태에서 두 곳에 입사지원을 넣었다. 연락이 안 오면, 최후의 보루는 또 다시 보험사 고객센터다. 엄마 병원 일정 지나는대로 지원해야지.
오지마세요 2026...
이제 내일이면 스물여덟이다. 서른까지 2년 남았다. 아니지, 내 밥벌이는 내가 알아서 해야하는 성인이 된지 8년째다.
이제는 “벌써 n살인데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우울한 소리는 안 한다. 그냥 아~무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하기 싫기 때문이다. 정말 진짜 아무것도 안 하고 싶은 건 아니고, 돈벌이를 안 하고 싶다. 그냥 원래 돈이 좀 있는 사람으로 태어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럼 내 작업도 계속 하고, 자격증도 따고, 이 시간을 알차게 보낼 수 있었을텐데.
8년동안 떠밀려가듯 살았다. 상황에 맞춰서, 환경에 맞춰서, 체력에 맞춰서. 그랬더니 아무것도 안 남았다. 이력서에 쓸 얘기가 없다. 국가 자격증이라곤 2종보통 면허가 전부다. 컴활 실기 준비하다가 이사가 겹쳐서 한 달을 미뤘다. 이제 이사 끝났으니 짐 정리 하느라 한 달 또 미룰 게 분명하다. 그러다보면 그게 1년이 되고 5년이 되고 8년이 되는 거다.
새로 산 다이어리에 신년 목표와 계획을 적었다. 매년 이 짓거리를 하고 있는데, 어쩜 매년 이루지를 못한다. 심지어 올해는 생각해보니... 회사에 다이어리 두고 왔다. 이제 갈 일 없는데. 이게 스물여덟의 행동이 맞나 싶다. 열여덟도 이러진 않을 것이다. 왜 이렇게까지 하면서 살아야 할까?
그럼에도 올해는
그래도 올해 이룬 것이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 두 번의 이사를 내돈내산으로 끝냈다. 2월에 못해도 2~300은 족히 썼다. 이번엔 좀 적게 들어 160 가량 썼다. (그래서 우울함...) 그리고 올해 최고의 도전이었던 운전 연수+홀로 운전을 무사히 해냈다. 더는 운전이라는 게 겁나지 않는다. 빨리 돈 모아서 모닝 사고 싶다. (사실 셀토스 사고 싶은데 셀토스 사려면 10년은 돈 모아야 될 거 같아서 목표를 하향조정했다.)
그리고 예술인복지재단에서 예술활동준비금 지원을 받아 악기를 샀고, 두 장의 EP 앨범을 발매했다. 올해 많은 일이 있었지만, 그 중 가장 감사한 일이다. 활동보고서도 최종 승인으로, 보완 없이 잘 마무리 됐다.
발매한 음원은 종종 벅스에서 4~50대 사이의 남성 분들, 또는 30대 여성분들이 들어주시던데 왜 들으시는지는 모르겠음..그 분들은 이게 공감이 될까? 아무튼 내년 초쯤 9~10월분 저작권료 정산이 기대된다. 그 땐 몇백원이라도 나오려나? 혹시 진짜 운 좋게 천원대로 나오면 울 것 같다.
그리고 올해 컴활 필기라도 패스했다. 진짜... 교재 안 사고 독학했으면 아직도 필기 준비 중이었을 건데 다행이지.
아 또 있다. 사이버대 평균평점 3.4 달성. (물론 F학점 두 개 빼고...)
그럼에도 기대를
내년에는 일단 컴활 실기를 패스해야 한다.
컴활 실기 패스 후에는 전산회계 2급 공부를 시작할 거다.
그리고 내년 1학기에 사복 필수 과목 몇 개 더 이수하고, 8월에 졸업하면서 현장실습+선택과목 몇 과목만 더 듣고 바로 사복 따야지.
게으름 안 부리고 제 때 제 때 잘 하면 9월부턴 사복으로 취업 준비하고.
그리고 내년 6월 정도에 정규 앨범을 낼 거다.
스케치 상태로만 두기 아까운 곡들이 쌓여서 내려는 것도 맞고, 음악한다면서 정규앨범 한 장 없는 건 개인적으로 좀 아닌 거 같아서 내려는 것도 맞고.
나는 내 음악을 사실 너무 좋아해서, 이 음악이 세상에 태어났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있다. 난 가끔 내 음악 전곡을 돌려듣곤 하는데, 구린 음질과 구린 믹싱, 구린 보컬, 구린 편곡... 좋아할만한 껀덕지가 1도 없지만, 구려서 좋아한다. 그러니까 구린 거 또 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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